요즘 아이들은 부모가 "돈 없어서 안돼" 하고 말리면 "엄마 카드 있잖아"라고 대답한다죠? 아이들에게 신용카드는 정말 신기한 도깨비방망이라도 될 듯합니다. 뭐든 카드 한 장이면 구입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으니 말입니다. 사실 어른들도 그랬죠. 각종 포인트와 할인 혜택으로 여러 장의 카드에 혹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서비스가 정말 고객을 위한 것일까요? <오마이뉴스>는 '나는 왜 카드를 잘랐나' 기획을 통해 '당겨 쓰고 갚게 하는 소비 문화'를 바꾸고자 합니다. 비슷한 사례가 있으신 분은 직접 기사로 입력하셔도 좋습니다. [편집자말]
처음 신용카드를 발급받은 것은 2001년 10월이었다. 당시에는 길거리에서도 쉽게 신용카드를 발급 받을 수 있었다. 신용카드 한 장만 있으면 영화관은 물론이고 놀이동산 자유이용권도 할인 받고 입장은 무료로 할 수 있었다. 발급시 사은품까지 주는데 발급 받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한 달 만에 신용카드는 3장이 되었다.
카드마다 할인을 받을 수 있는 곳이 달랐기에 그때 그때 필요한 카드를 골라 써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당시에는 할인을 받기 위한 실적 기준이나 연회비가 없었기 때문에 신용카드는 알뜰한 생활을 위한 필수품처럼 느껴졌다. 더구나 카드를 써도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것은 한 달 뒤였기 때문에 내 돈이 통장에 더 오래 머물러서 이자 소득도 챙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카드, 날 위한 선택인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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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찌지직~" 하면서 단말기에서 매출전표가 올라오는 걸 보면서 신용도가 올라가는 것 같아 뿌듯한 마음까지 생겼다. 그것도 잠시... ⓒ 최은경
"찍~찌지직~" 하면서 단말기에서 매출전표가 올라오는 걸 보면서 신용도가 올라가는 것 같아 뿌듯한 마음까지 생겼다. 써도 써도 넉넉한 신용카드의 한도를 보면서 뭔가 대우를 받고 있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자연스레 나의 신용카드 사용금액은 점점 늘어났다.
신용카드 사용에 완전히 익숙해졌을 때는 내가 신용카드로 얼마를 쓰고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카드 결제금이야 통장에서 알아서 빠져나갈 것이고 어차피 현금은 거의 쓰지 않으니 통장 잔액이 얼마가 남았는지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문제는 이직할 때 생겼다.
월급이 안 들어와도 카드 명세서는 어김없이 날아왔다. 무려 200만 원이나. 신용카드로 물건은 구입하지만 실제 결제는 보통 한 달 뒤에 이뤄지는 만큼, 그동안은 내 통장에 돈이 더 머물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통장에 돈이 남아있기는커녕 당겨 쓰고 갚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메일로 날아오는 명세서를 이때 처음 확인해봤다. 200만 원의 결제금액 중 비싼 물건을 결제한 것은 단 한 건도 없었다. 그때 그때 밥 먹고 차 마시고 영화보고 했을 뿐이다. 푼 돈으로 쓴 돈이 모아놓고 보면 엄청 큰 돈이 된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영화 할인이 되니까', '마트 할인이 돼서', '교통비 할인이 되니까', '커피 할인이 되니까', '혹시 모르니 비상용으로' 만들었던 신용카드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정말 내가 카드로 혜택을 많이 보고 있는 게 맞나?'
신용카드를 할인혜택 공부까지 해가면서 써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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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H농협 신용카드 창구 서울 중구 NH농협은행 남대문금융센터에 설치 되어 있는 신용카드 창구. ⓒ 이희훈
카드 만들 때 할인해 준다고 했으니 카드사에서 알아서 해줄 거라 믿었던 내가 너무 순진했었나보다. 청구서에 실제로 할인 받은 금액을 따져보니 한 달에 2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신용카드로 200만 원이나 쓰는데도 말이다.
전혀 사용하지 않아도 할인혜택을 제공하던 신용카드는 언제부턴가 할인혜택을 받기 위한 실적 기준을 만들어놨다. 더구나 제휴관계가 종료가 돼서 더 이상 할인을 받지 못 하는 곳도 꽤 많았다. 청구서를 확인하지 않으니 이런 사실들을 한참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다.
어떻게 하면 최적의 할인을 받을 수 있는지 가지고 있는 신용카드를 다시 분석했다. 카드별로 용도를 다시 정해봤다. 매월 중순쯤에 카드의 사용액을 집계해보고 어떤 카드를 더 써야 할인을 받을 수 있을지 다시 계산 하는 것을 몇 달간 반복했다. 소위 자신의 실속만 차리는 소비자를 일컫는, 체리피커(cherry picker)가 된 것이다.
하지만 결제할 때마다 여러 장의 카드 중에서 어떤 카드를 내미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지를 외우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결국 카드 뒷면에 메모까지 해놨다. 할인 받는 금액은 이전보다 분명 늘었지만 그 이상으로 난 피곤한 삶을 살아야 했다.
더구나 신용카드의 실적기준이라는 것이 갈수록 까다로워졌다. 처음에는 분기에 30만 원만 써도 된다고 하더니 한 달에 30만 원으로 바뀌었다. 사용금액에 따라서 할인혜택도 달라졌다. 다시 할인한도와 할인 횟수 제한이 생기고 실적기준에서 제외되는 항목들도 생겨났다. 일일이 다시 공부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굳이 공부까지 해가면서 신용카드를 써야하나?'
매번 날아오는 청구서를 꼼꼼이 살피고 수시로 업그레이드 되는 신용카드를 공부해서 사용하기에 나는 너무 게을렀다. 카드 할인혜택 좇아다니는 것이 구질구질하고 찌질하게 느껴졌다. 더구나 신용카드 혜택치고 돈 안 쓰고 주는 혜택은 단 하나도 없었다. 쥐꼬리만큼 할인 받기 위해서 써야하는 돈과 노력은 너무나도 컸다. 그래서 결정했다.
'차라리 신용카드를 없애야겠다.'
담배 끊는 것보다 어려운 카드 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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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국민카드, NH농협카드, 롯데카드사의 역대 최대 개인정보 유출사건으로 국민들의 불안은 점점 커지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일단 은행에 가서 체크카드부터 만들었다. 하지만 신용카드와 이별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미 신용카드로 저질러 놓은 것이 많았기 때문에 남은 월급만 가지고 한 달을 보내는 것부터가 굉장히 힘들었다.
체크카드에 돈을 넣어 놓는 것도 습관이 안 돼서 쓰다 보면 잔액이 부족하기 일쑤였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 체크카드를 내미는데 "한도 초과입니다"라는 종업원의 말이 그렇게 무안할 수가 없었다. 잠드는 순간까지도 한도 초과 생각에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였다.
체크카드에 잔액이 없어서 신용카드를 쓰고, 또 잔액이 부족할까봐 신용카드를 썼다. 신용카드 개수는 줄어들었지만 결제금액은 어느 순간 원상 복귀 되었다. 비싼 물건은 하나도 사지 않았고 나름 아껴쓰려고 했는데도 말이다. 카드 명세서를 다시 들여다봐도 결국엔 다 쓸 곳에 썼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저 카드 값이 많이 나오면 몇 달 긴장하고 노력했다가 그리고 다시 풀어졌다가 또 화들짝 놀라서 좀 긴장하고 하는 생활이 2년 이상 반복되었다. 어렵다는 취업도 하고, 정말 독한 사람만 성공한다는 담배도 끊어봤지만 신용카드를 없애는 것은 그보다도 몇 배는 어려웠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별다른 대책 없이 신용카드를 일단 잘라버렸다. 통장에 돈이 없으니 불입하고 있던 보험을 하나 해지해서 해약환급금으로 한 달을 버텼다. 그리고도 할부가 끝날 때까지 석 달 정도를 바짝 아끼며 살아야 했다.
하고보니 담배 끊는 것과 똑같더라. 담배 끊을 때도 하루에 한 갑 피던 걸 조금씩 줄여서 끊으려 할 때는 늘 실패했었다. 끊으려면 한 번에 확 끊어야 끊어졌다. 카드도 조금씩 줄여서 없애는 것보다 한 번에 없애는 것이 훨씬 쉬웠다. 담배 끊을 때 금단현상이 오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신용카드도 마찬가지다.
쓸 거 다 써가면서 아무런 불편 없이 신용카드를 없애려 하면 절대 안 없어진다. 한두 달 바짝 불편함을 견뎌내면 그 다음부터는 무척 편해진다. 얼마나 편해지냐고? 인생에서 결제일이 사라지는 거다. 월급날이 되어도 지난 달에 받은 월급이 남아 있다. 결제금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으니 월급날이 즐거워진다. 단지 카드만 잘랐을 뿐인데 말이다.
신용카드 사라진 이후 내 통장... 돈이 남아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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