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와인이라도 '보틀로켓'이 팔면 더 잘 팔립니다. 고객의 마음을 읽는 방식으로 와인 매대를 구성한 덕분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진열하면 공간 활용도가 떨어집니다. 해결 방법은 없을까요? 위스키 매대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Quick View
· 들어가며
· 비효율적이어서 효과적인 매장
·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효율은 비효율
· 비효율을 극복한 AI 스피커의 효용
· AI가 바꾸는 식음료업의 풍경
본 콘텐츠는 읽는 데 총 6분 정도 소요되며, 책 <뭘 할지는 모르지만 아무거나 하긴 싫어>의 일부입니다.
맥도날드가 밀크셰이크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애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에 맥도날드는 핵심 소비자군의 취향을 조사하고, 결과에 따라 밀크셰이크의 맛, 농도 등을 조정해 보기도 했지만, 판매량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고객의 입맛에 맞는 밀크 셰이크를 출시해도 판매량이 늘지 않으니, 풀리지 않는 문제에 봉착한 듯 보였습니다.
문제 해결의 단초를 찾은 사람은 파괴적 이노베이션 이론의 최고 권위자이자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인 클레이턴 크리스텐슨Clayton Christensen이었습니다. 그는 밀크셰이크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고객의 밀크셰이크 구매 패턴을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밀크셰이크 전체 판매량의 40%는 오전 9시 이전에 발생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 시간대는 성인 남성 고객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들이 드라이브스루Drive-thru나 매장 방문을 통해 밀크셰이크를 테이크아웃 해갔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오후 간식으로 주로 찾을 것 같은 밀크셰이크를 성인 남성들이 바쁜 출근길에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맥도날드 밀크셰이크가 출근 시간동안 간편하고, 든든하게 배를 채우는 훌륭한 아침 식사 대용이기 때문입니다. 여유롭게 앉아 아침 식사를 즐길 여유는 없고 굶기에는 배가 고프니, 운전을 하면서도 한 손을 활용해 마실 수 있는 밀크셰이크를 선택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밀크셰이크는 농도가 걸쭉해 빨리 마시기 어려워 출근길의 심심함을 달래줄 수 있는 장점도 한몫했습니다.
맥도날드는 고객들의 구매 패턴에 착안하여 출근길에 판매하는 밀크셰이크를 오후에 판매하는 밀크셰이크보다 더 뻑뻑하게 만들고, 더 가는 빨대를 제공해 더 오랜 시간 동안 즐길 수 있도록 했습니다. 여기에 과일을 갈아 넣어 영양과 식감을 더했습니다. 이렇게 고객이 밀크셰이크를 구매하는 맥락에 집중해 제품을 개선한 결과 밀크셰이크 판매량이 7배나 증가했습니다.
“생활에서 발생하는 어떤 일 때문에 그들이 이 매장에 와서 밀크셰이크를 고용하는가?”
클레이턴 크리스텐슨 교수가 밀크셰이크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질문입니다. 그는 소비자들이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소비자들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고용하여 그들이 해야 하는 일을 대신하도록 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품의 특성이 아니라 고객이 제품을 구매하는 목적을 연구하면, 고객이 이 제품을 사야만 하는 이유를 더 명확히 제시할 수 있습니다.
맥도날드가 고객들이 밀크셰이크를 고용해야 하는 이유를 만든다면, 미국 뉴욕에 위치한 주류 판매점인 ‘보틀로켓Bottlerocket’은 와인과 위스키를 고용해야 하는 이유를 제안합니다. 그래서 이 매장은 판매하는 주류를 전형적인 카테고리로 구분하지 않고, 고객이 주류를 구매하는 맥락에 따라 분류해 판매하는 술의 가치를 높입니다.
비효율적이어서 효과적인 매장
보틀로켓 매장의 진열 방식은 독특합니다. 보통의 와인 가게처럼 레드, 화이트, 스파클링 등으로 와인을 구분하거나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 등 국가별로 구분하지 않습니다. 대신 와인을 구매하는 목적, 페어링하면 좋은 음식 등 고객이 와인을 고를 때 고려할 만한 기준들로 와인을 분류합니다. 와인을 구매할 때 와인의 속성만큼이나 와인을 구매하는 맥락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고객의 관점에서 와인을 재분류해 놓아, 이 매장에서는 같은 와인이라도 여러 곳에 진열되어 있습니다. 중복해서 진열하는 방식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매장 안을 살펴보겠습니다.
매장 중앙의 와인 섹션에는 10여 개의 마름모꼴 매대가 있습니다. 각 매대는 각각의 테마를 가지고 있습니다. 테마는 육류, 가금류, 해산물, 파스타 등 와인과 페어링할 만한 음식이 되기도 하고, 선물, 가성비, 새로운 도전 등 와인을 구매하는 목적이 되기도 합니다. 매대 가운데에는 테마를 상징하는 커다란 장식이 있어 위트를 더합니다. 덕분에 매장을 방문한 고객들은 와인을 구매하려는 맥락에 따라 매대들을 옮겨 다니며 와인을 고를 수 있습니다.
테마별 구분의 효용을 높이는 건 4가지 하위분류입니다. 마름모꼴 매대의 4개 면은 테마를 4가지로 구분하면서, 구매 목적을 또 한 번 세분화합니다. 예를 들어 해산물 테마의 4개 면은 각각 어두운색 생선, 밝은색 생선, 조개류, 기름기 많은 생선에 어울리는 와인들을 추천합니다. 선물 테마에서는 오래된 친구, 상사, 3번째 데이트 상대, 잘 모르는 사람 등 선물을 받는 사람을 4가지 타입으로 구분하여 각 목적에 따라 와인을 분류합니다. 세부 테마에 대한 설명도 콜라주로 표현해 보는 재미를 더합니다.
테마별 분류가 와인과의 첫 만남을 직관적이고 즐겁게 만들었다면, 선택을 돕는 건 와인에 대한 정보입니다. 보틀로켓은 진열한 모든 와인 아래에 가격과 함께 와인의 이름, 맛, 페어링하면 좋은 음식, 생산지, 매장의 자체 평점 등을 기록한 카드지를 배치해 고객들이 와인을 구매할 때 참고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효율은 비효율
보틀로켓의 고객 친화적인 진열은 고객에게 효용을 줍니다. 하지만 매장 입장에서 보면 공간 활용에 비효율이 생깁니다. 10개가 넘는 마름모꼴의 매대를 비치하고 각 매대 사이로 고객들의 동선을 확보하려면 넓은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테마별로 매대를 구성하면 동일한 와인을 여러 곳에 진열해야 해서 비효율적입니다.
여기에 더해 와인 추천의 깊이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테마별로 4개 하위 분류를 구성하기는 했지만, 그 이상으로 기준을 세분화하기에는 물리적인 디스플레이 공간이 부족합니다. 공간을 넓히거나 매대의 각을 늘려 몇 단계 더 세부적인 기준을 구현한다고 하더라도 지나치게 복잡해져 버린 진열에 오히려 고객들의 효용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선물 테마에서는 3번째 데이트 상대, 상사, 오래된 친구 등으로 선물 받는 사람을 구분해 와인을 추천합니다. 선물하는 사람의 입장을 반영한 분류입니다.
와인을 분류하는 기준이나 추천하고자 하는 와인이 바뀔 때도 비효율을 수반합니다. 와인을 분류하는 테마를 바꾸기 위해서는 매대의 테마를 상징하는 거대한 토퍼부터 하위분류를 설명하던 콜라주까지 모두 수작업으로 변경해야 합니다. 매대별로 추천하는 와인을 바꿀 때도 와인의 진열은 물론이고 각 와인에 대한 카드지까지 다시 만들고 갈아 끼워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습니다.
보틀로켓의 매장 진열 방식이 와인을 구매하고자 하는 고객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 주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에 따라 발생하는 매장의 비효율을 극복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비효율을 극복한 AI 스피커의 효용
보틀로켓에서는 와인 말고도 위스키를 판매하는데, 위스키 섹션에서 와인 섹션이 안고 있는 비효율을 극복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첫인상만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와인 섹션과 달리, 위스키 섹션은 단출합니다. 보통의 주류 판매점처럼 직사각형 선반에 100여 가지의 위스키가 진열되어 있습니다. 평범해 보이는 매대를 비범하게 만드는 건 중앙 부분입니다. 인공지능 플랫폼인 알렉사가 탑재된 스피커 ‘아마존 에코Amazon Echo’가 설치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스피커를 통해 고객에게 맞는 위스키를 추천해 줍니다.
고객이 “알렉사, 보틀 지니어스를 시작해(Alexa, open Bottle Genius)”라고 말하면 알렉사가 첫 번째 질문을 던집니다. 알렉사는 고객에게 위스키를 구매하고자 하는 목적이 선물용인지, 평소 즐겨 마시는 위스키와 비슷한 것을 찾는지, 아니면 좋아하는 위스키 외에 새로운 것을 도전해보고 싶은지에 대해 묻는 것으로 위스키 추천을 시작합니다. 세 가지 답변 중 한 가지를 선택해 대답하면, 질문을 여러 차례 이어가며 추천할 만한 위스키 후보군을 좁혀 갑니다. 마지막 질문까지 마치면, 고객의 대답에 따라 알렉사가 최종적으로 추린 몇 가지 위스키 아래에 불이 켜집니다. 불이 켜진 위스키에 대한 상세 설명도 알렉사가 음성으로 들려주어 그 자리에서 바로 위스키에 대한 정보를 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인공지능 스피커를 활용하니 와인 섹션에서 발생하는 비효율이 해결됩니다. 추천하는 과정을 와인 섹션처럼 진열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소프트웨어로 대체함으로써, 위스키를 한쪽 벽면에 효율적으로 진열하고도 고객의 맥락에 맞게 추천할 수 있습니다. 와인 섹션과 달리 테마별로 매대를 구성할 필요도 없고 중복 진열을 할 필요도 없어, 공간을 아낄 수 있습니다.
또한 알렉사를 활용하면 추천 과정을 고도화할 수 있습니다. 와인 섹션에서는 테마별로 4개의 하위 구분이 있는데, 추천 과정으로 보면 2단계의 질문을 담고 있는 셈입니다. 이럴 경우 추천 과정을 늘리기 위해선 물리적 공간이 추가로 필요합니다. 하지만 인공지능 스피커로 추천을 하면 공간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질문의 수를 늘려 추천 과정을 정교화할 수 있고, 이에 따라 제안의 정확도도 높아집니다.
그뿐 아니라 위스키를 추천하는 질문을 바꾸거나, 입고되는 위스키가 달라질 때마다 물리적으로 매대를 변경하거나 카드지를 다시 제작할 필요도 없습니다. 간단한 코딩만으로도 변경된 질문과 위스키 정보를 반영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제품을 추천해주는 위스키 섹션에서 비효율을 덜어내면서도 고객 효용을 높인 미래의 매장을 엿볼 수 있습니다.
몇 번의 질의응답 끝에 AI 스피커가 최종적으로 추천하는 위스키 아래에는 파란색 불이 들어옵니다.
AI가 바꾸는 식음료업의 풍경
보틀로켓에서 알렉사는 고객에게 제품을 파는 방식을 바꾸었습니다. 음성 인식 기술과 인공지능을 활용해 고객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제공하고, 판매로 연결하는 것입니다. 별도의 매대 구성이나 직원 없이도 고객과 대화하듯 양방향 소통을 하며 고객의 니즈에 다가간다는 점에서 차별화됩니다. 고객의 맥락을 파악하는 역할을 음성 인식 기술과 인공지능이 대체하고 있는 셈입니다.
보틀로켓뿐만 아니라 식음료 산업에서는 알렉사와 같은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중입니다. KFC, 도미노 피자, 던킨 도너츠 등의 기업들은 일부 매장을 중심으로 아마존의 알렉사 또는 구글 어시스턴트Google Assistant를 활용해 주문을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문 방식이 기존의 키오스크 혹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의 기능을 음성화한 수준이라면, 인공지능 기술에 해당하는 딥러닝이나 머신러닝 등의 기술을 적용해 기술의 활용도를 높인 사례들도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영국 런던의 맥주 스타트업 ‘인텔리전트엑스IntelligentX’는 소비자의 맥주 맛과 선호에 대한 데이터를 모아 고객이 가장 선호하는 맛의 맥주를 만듭니다. 미국의 ‘챔피언 브루잉Champion Brewing’도 머신러닝 회사인 ‘메티스 머신Metis Machine’과 협력해 맥주 맛에 대한 학습 모델을 만들고 최고의 IPA 레시피를 찾아냈습니다. 이처럼 인공지능 기술은 마케팅을 넘어 제품 개발 단계에서도 활용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사고를 본 떠 만든 알고리즘이지만, 기술의 발달로 이미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인간의 사고방식을 습득한 인공지능이 이제는 인간이 고려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사고할 수 있으니 머지않아 인공지능 기술을 도입한 식음료 업계에도 현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 펼쳐지지 않을까요?
Source :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6789065&memberNo=25079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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