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옷을 입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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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옷을 꺼내 입을 때면 나는 나 자신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그 화려한 봄과 그 무더운 여름을 보내고 
이제는 조용히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기 때문입니다.
가을에 옷을 한 겹 더 입으면 마음도 그만큼 따뜻해집니다.
어깨 위로 떨어지는 투명한 햇살은 나를 조금 더 맑고 밝게 합니다.
가을이 특히 좋은 것은 '지나간 나'를 이해하고 받아 주기 때문입니다.
어떤 욕심도, 부끄러움도, 서러움도 다 다독여 받아 주고 품어 줍니다.
이것이 가을의 본질이기에 우리는 가을에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잎이 무성할 때는 안 보이던 나무들이 잎을 떨구면 제 모습을 드러내듯 
나도 가을 앞에서 나를 좀 더 많이 드러내고 싶습니다.
그러면 그만큼 더 달고 깊게 익어 가겠지요. 

글·사진 정용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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